가을이다. 그동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많은 땀을 흘리면서 보냈던 시간들이 결실을 맺어가는 계절이다.
이맘때 농촌의 들녘을 바라보면 아름다운 풍경과 각종 풍부한 먹을거리에 우리들의 눈과 입은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농업인들은 터져 나오는 한숨에 주름이 깊어진다. 흉년이 들면 내다 팔 것이 없어 울고, 풍년이 들면 값이 떨어져 제값을 못 받기에 그렇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은 쌀 완전 개방, 농산물 생산대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자연재해와 가축 질병 확산 등으로 인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2차 산업, 3차 산업, IT산업이 점점 부흥하면 할수록 1차 산업이 경제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오히려 요즘세대는 1차 산업보다 IT산업 새로운 산업들의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다. 농업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근본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 1차 산업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3요소 ‘의식주’를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런 산업을 우리가 등한시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대국들은 2차, 3차, 5차(취미, 오락, 패션 산업), IT산업이 아니라 1차 산업을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다.
미국은 옥수수, 콩, 담배, 사과, 파인애플, 밀 등 각종 농산물의 생산량이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으며, 생산된 대부분의 작물은 실질적으로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기 때문에 주요 식량 수출 강대국이다.
프랑스도 밀, 포도 등 다양한 농작물 재배와 수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부 유럽 제1의 농업국이라 불리고 있다.
또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질 좋은 포도재배로 와인 세계수출 1위 국가이기도 하다.
스위스, 덴마크 또한 농업 중심이며, 스웨덴, 노르웨이는 수산업 중심이다.
이처럼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강대국들은 모두 1차 산업을 바탕으로 한 농업 국가인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1차 산업 농업이 우리에게 국가경제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만약 값싼 외국산 쌀에 밀려 우리가 쌀농사를 포기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싼 값에 쌀을 사먹을 수 있을까?
단적인 예로 밀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로 우리는 값싼 밀을 원조 받은 대가로 밀농사의 경쟁력을 잃어 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밀은 소비량의 거의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만약 밀 값이 폭등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가 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1차 산업이 무너지면 가장 큰 피해는 누가 뭐래도 서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민이 무너지면 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지금 정부는 1차 산업은 도외시한 채 새로운 산업육성에 보다 많은 국가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새 먹거리를 찾는 일은 정말 필요한 일이지만 1차 산업을 이렇게 천대해도 좋을까?
1차 산업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정부가 1차 산업이라는 기본을 무시한 채 새로운 산업에만 집중 투자한다면 결국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미래세대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1차 산업에 대한 투자를 더 이상 도외시하면 안 된다.
풍년과 흉년에 상관없이 농가를 안정시키고, 자연재해에 크게 피해 받지 않도록 새로운 기술개발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농촌이 안정되어야 농민이 산다. 농민이 살아야 서민이 살고, 서민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쉽게 가려고 하지 말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길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유희태 = 前기업은행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