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읍·면이고 양로당·경로당 많다. 이 가운데 ‘고산양로당(4m×4m)은 여느 양로당과 격이 아주 다르다. 규모와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설립 연유가 특이하다. 현재 목조 고산양로당은 방 하나에 대청 딸린 기와집으로 건물을 지탱하는 보가 아름드리로 볼수록 소중하고 안팎에 걸려있는 현판 자체가 문화재이다. 읍내리에 있으며 광무9년(1905:을사년)에 세웠다. ‘양로당(養老堂)’ 세 자와 ‘봉성(鳳城)’ 두 글자는 당시 고산군수 김규현(金奎鉉) 아들 효남(孝南) 8∼9세 때 글씨고, ‘고산(高山)’ 두 자는 안익환(安翊煥) 군수 아들 규명(奎明) 열한 살 때 휘호이다. 6·25난리에 불타지 않았고 도둑이 놔두어 기적이다. 옛 이름 “사균정(舍均亭)” 서문은 이용관(李容寬) 글이다. 조선 9대 성종 때(1478)의 양로연(養老宴) 기록이 『문헌전고(文獻典故)』에 있다. 「국학에서 양로연을 거행할 때 판중추부사 손효손이 임금께 “군신이 함께 즐기는 오늘 잔치는 진실로 태평성대의 기상이오니, 시골마다 외로운 홀아비와 과부에게도 이처럼 하면 싫어하는 자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아뢰니 왕은 “그렇구나. 모든 도의 수령들에게 늙은 백성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도록 하라” 영을 내렸다.」 [행양로어국학(行養老於國學), 판중추손순효계왈(判中樞孫順孝啓曰), 금일지연(今日之宴), 군신동락(君臣同樂), 진태평기상(眞太平氣像) 여리관과고독(閭里鰥寡孤獨), 기무부득기소자호(豈無不得其所者乎), 어시(於是), 명도수령(命道守令), 연향로민(宴饗老民)] 420년 전 이야기이다. 고산 이런 유래 따라 양로당이 섰다고 봐야 한다. 흔히 양로당을 ‘노인들 대접하는 집’이라 생각하는데 실은 ‘노인들이 자주적으로 수양(修養)하는 집’이다. 고산 장터에서 괘씸하게 구는 자 잡아다 멍석말이를 하여 버릇장머리를 고쳤고, 군정을 도우며 군수 자문도 했다. 지난 봄·여름 양로당 헐고 새집 한 채 짓자는 일부 의견이 있었다는데 마침 당임(堂任)의 신중한 태도와 문화가치를 따져 보고 추진하자는 여론이 있어 위기를 넘겼다. 만일 치울 경우 헐지 말고 팔거나 박물관에 옮겨 오래 두고 봐야 한다. 이런 논쟁을 중단하고 고쳐 현장 보존이 가장 좋은 방책이다. 고산 양로당은 ‘명륜당(明倫堂)’, ‘정안당(靜安堂)’과 함께 고산 3당(堂)에 든다. 틀니 좋아도 생니만 못하고, 금반지(금지환) 150년 되어도 금은 금 도금과 다르다. 도포에 갓 쓰고 나오기야 어렵지마는 집 부수자는 오판은 두고두고 욕 먹는다. 전주 풍남문 사람과 우마차 아니 다녀도 자랑스러운 308호 보물(寶物) 아닌가?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0: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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