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새롭게 완주여성단체협의회의 수장이 된 안춘자(54)회장은 완주군 12개 여성 단체를 이끌고 가야하는 중책을 맡았다.
취임과 함께 민선 6기 박성일호(號)가 공약으로 내건 ‘완주 여성들의 권익신장과 복지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목적지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 지 감시자의 역할도 해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지난 달 28일 취임 후 1년 6개월 동안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달려왔을 안회장의 어깨를 잠시나마 가볍게 해주고 싶은 생각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날 오후 1시 군청 어울림 카페에서 만나 평소 궁금했던 안회장의 이야기보따리를 하나하나 풀었다.
큰 누님 같은 포근한 인상에다 활짝 웃는 미소에서 넉넉한 인심이 묻어 나오는 안춘자 회장. 현재 삼례에서 지업사를 운영하고 있다.
완주군 소양이 고향인 그는 농사짓는 평범한 가정에서 2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나 학창시절을 소양에서 보냈다. 5대째 이어온 카톨릭 집안의 영향을 받은 탓에 어릴 적 꿈이 수녀였단다.
“학창시절 기억에 남는 일은 저녁 먹고 나면 무조건 매일 1시간씩 기도했던 것인데요. 그때는 되게 힘들었는데 되돌아보니 부모님이 교육을 잘 시켰던 것 같아요.”
생활력이 강한 모친과는 다르게 선한 성격에 욕심 없이 평범한 농부였던 부친은 집안일보다는 마을과 성당일에는 늘 팔을 걷어 부칠 정도로 앞장섰으니 소양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
이러다 보니 생활은 늘 쪼들렸다. 모친을 닮아서 일까? 어느 날 안 회장은 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일념에 주경야독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모님에게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제 스스로 동생들을 돌보며 가르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안 회장은 당시 롯데, 신세계와 함께 3대 유통 회사로 불렸던 서울 미도파백화점에서 입사해, 신입사원 교육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6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뒤 고향에 내려와 스물 일곱 살이던 1988년 지업사를 운영하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 따라 도배일을 배웠는데 그때 당시 도배사 인건비가 1만2천원이었어요. 지금과 비교해보면...처음이다 보니 도배 일을 못해 눈물도 많이 흘렸죠.”
결혼 30주년을 앞둔 안 회장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들이 있다. 아들 조은호(23)군과 딸 자현(27)·남이(25)양. 지업사 상호가 첫째 딸의 이름을 따 ‘자현 지업사’라 지었단다. 안 회장은 성격이 모두 밝고, 자기 일들을 스스로 잘 하고 있다며 자식들을 칭찬했다.
“일을 하고 늦게 들어와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저녁 한 끼 따뜻하게 제대로 못 챙겨준 것이 제일 가슴 아파요.”
도배일을 하면서 남들처럼 평범한 주부로서 생활을 하던 안 회장은 지난 2002년 주부교실 완주지회(소비자교육중앙회 완주지회) 총무로 일하면서 본격적인 여성단체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 해 늦깎이로 우석대 아동복지학과에 입학, 부전공으로 선택한 소비자학을 통해 소비자 전문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소비자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주부교실 전북도지부를 찾아가 상담사를 자청한 뒤 3개월 간 무급으로 일했다.
그의 노력에 탄복한 도지부장은 완주군지부를 소개해줬고, 총무라는 직함을 맡게 됐다. 하지만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기본적인 서류 준비 등으로 거의 1년을 보냈다. “비영리단체 등록이 되지 않아 보조금 없이 일을 했어요. 그래서 비영리 단체 준비도 하고 바쁘게 생활했어요.”
2010년, 주부교실에 열정을 쏟으며 열심히 활동했던 그에게 회원들은 회장이란 자리를 앉게 해줬다. 30명이던 회원은 100명으로 늘어나는 등 일취월장했다.
주부교실의 회장에 취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매년 추진했던 사업은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유형지표). 성격유형 검사를 통해 남편의 성향을 파악, 사전에 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회원들에게 저는 남편과 싸우지 말고 둘이 상의해서 해결해야지 ‘내 탓 네 탓’하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성격유형검사를 하는 이유에요.”
회원들에게 안 회장이 강조하는 또 하나는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건강하다’는 것이다. 즉, 청소년 및 아동문제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부부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안 회장의 지론이다.
때문에 안 회장은 결혼 전 부부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내가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면 어떠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겠다는 등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부교육을 대학필수과목으로 넣었으면 좋겠어요.”
안 회장은 부부관계 및 부부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10분 넘게 이어갔다. “요즘 보면 상대에게 이익을 얻기 위해 결혼하려해요.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파경이 많은 거라 생각해요. 내가 좀 손해 본다고 생각해야지 상대에게 덕을 보려는 마음은 부부간에 금이 가는 지름길이죠.”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완주군여성단체협의회장의 인터뷰인 만큼 여성단체에 대한 바람을 들어봤다.
“저는 12개 단체마다 각자의 색깔을 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합니다. 현재 대부분 군민들은 그 단체가 그 단체인 것 같고, 혼동을 하죠. 분명히 단체마다 하는 일들이 다릅니다. 누가 보던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자기 색깔을 내라는 것이죠.”
계획도 밝혔다. “여성회관이 건립되면 입구에 박스로 자기작품을 만들어 놓은 뒤 돈 없어 가게 못내는 분들의 명함을 놓으면 오는 사람들이 주문하도록 하고 싶어요. 대형 세탁기도 구입해서 마을에서 빨래 못하는 분들을 돕고 싶습니다.”
요즘 고민거리를 묻는 질문에 ‘자식들’이라고 말한 안 회장 역시 여성단체장이기 전에 우리 네 어머니와 똑같았다.
“항상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여성단체일도 중요하지만 1번은 가족입니다. 아무리 단체 활동을 잘해도 가정이 파괴되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덧붙이고 싶은 한 마디를 끝으로 완주군여성단체협의회 안춘자 회장과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12개 단체 회장님들이 협조를 잘해주니 고맙고, 무엇보다 앞으로 잘못된 부분은 채찍질 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