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둘(12) 의미 많다. 1년 열두 달에서부터 시작해서 예수 제자 12인, ‘얌전도 열두 가지!’, ‘솜씨도 열두 가지!’ ‘변덕도 열두 가지!’ 이런 속담이 있다.
‘연필 한 타스 열두 자루!’ 기억 날 것이다. 내 머리 속 어떤가 생각해 보니 ‘열두 가지 재주’가 있다.
그런데 한결같지 못하고 전공 없이 평범하여 별명하나 없는 주제라 무슨 ‘열두 가지 재주냐’ 물으면 아무 말도 못하니 상대방만 허탈케 한 혼자만의 만흥(漫興)일 뿐이다.
떠오른 시상 끄적거려 놓은 걸 뒤에 보면 낙서이고, 쏟아지는 생각 적으면 산문·수필인데 약 500회 연재 중이나 세 사람 전화밖에 받지 못했으니 종이만 더럽힌 꼴이다.
반가운 사람 마주하면 나오는 얘기 녹음 들어보면 나부터 듣기 싫다. 사투리에 억양, 고저, 음질 한 마디로 잡음이다. 일본어 초급 실력 해방과 더불어 접었으니 기억나는 단어 몇이랴.
심심해서 『SBS 독학일본어 첫걸음』을 펼쳐보니 ‘あいうえお…’, ‘家へ歸る’ 등 신기(?)해 보여 ‘계속 공부했더라면’ 하는 후회 너무 늦었다.
틈나면 문집이나 『왕조실록』을 보는데 아는 것 모르는 것 반반 이 실력 ‘십맹일목(十盲一杖)’은 고사하고 내가 눈 뜬 장님이다.
간찰 가치가 크다기에 편지 쓰기 즐기나 받은 답장 거의 없어 우표 값만 축낸 셈이다.
사교의 으뜸은 노래이기에 진북(鎭北) 터널 지날 때마다 소리 높여 , 불러보지만 늘 돼지 목 따는 소리 관광여행 가자면 노래시킬까 봐 겁이 먼저 난다.
어쩌다 부탁받고 써 보낸 글 원고료 미안할 정도로 반응 적고, 컴퓨터 안에 잠자는 소설 몇 편 실을 지면이 없다.
여자와의 친교 ‘0점’이라 처 외에 전화할 여자 없고, 여성 전화에 당혹할 일 없으니 팔자소관이나 더 얘기하면 여자 비하가 될까 봐 줄이되 내 놓고 자랑, 발뺌, 변명할 꼬투리가 없어 편하다.
근래 구치용 선생 시 ‘청정생애소소탐(淸淨生涯少所貪-어릴 적부터 탐낸 건 깨끗하게 사는 것)’에서 위로 받았고, 좀 비슷한 데가 있어 빙그레 웃으며 머리통을 두들겨 보니 툭툭 소리만 난다.
열두 가지 재주 있으면 뭣하랴. 화산면 화월리 문화유씨 봉헌(鳳軒) 유기홍(柳琪洪)씨와 삼기면(三奇面) 와룡리 밀양박씨 취곡(翠谷) 박광태(朴光泰)씨는 진안 수당 이덕응(李德應) 선생 제자라 주천면 화양산 정상 황단(皇壇)에서 매년 올리는 제사에 유·박 양인 후손 동행하고 싶으나 전연 알 길이 없다.
바람 같은 마음 누가 묶을 수 있으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회담 성사 과정을 보며 치하한 글 보신 분 4천200인이 있어 내 재주 시험이 됐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