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국 산업구조 농사 위주이던 시절 농촌에 ‘비농가(非農家)’ ‘무농가(無農家)’란 말이 있었다. 땅 없어 농사짓지 못하는 이의 지칭이다. “‘송곳 하나’ 꽂을 자리 없다” 땅 한 평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도대체 뭘 먹고 살았나. 측은하다. 목구멍이 포도청 막걸리 장사나 짚신을 삼아 팔았다. 지금 시골이야 묵는 땅이 많아 일 욕심만 있으면 심고 가꿔 세끼 먹고 사는 데는 별문제가 없다. 화산면 와룡리 김봉회 씨 농업경력(農業經歷) 70년 지금도 광작하며 90여 두 소까지 기른다. 장자로서 아래 8남매를 가르치고 여웠으며 부모 생일 제사에 온갖 정성 다하며 6·25전쟁 때를 회상한다. ‘형제 위해 농사한다’는 지론이다. 평상시는 청정 산물을 보내주고, 전쟁나면 먹여 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게 농심 이래서 농사를 생명줄이라 한다. 마침 아들 며느리가 뜻을 받들어 집안과 농촌이 지탱해 나간다. 국민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 농민임을 알아야 한다. 논 중에 으뜸은 문전옥답(門前沃畓) 일하기 수월하다. ‘텃논 세 마지기와 부잣집 맏며느리 바꾸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동네 마당물이 흘러들어 좋을 수 밖에... 바깥 샘 공동우물가 미나리꽝은 그 마을 잘 사는 사람 것이었다. 땅이 걸어 왕골이 잘 자라 돗자리를 처 여식 출가 때 보내면 1등 혼수품이었다. 농촌에선 농사지어야 하고 도시 나가면 장사해야 먹고 살았는데 지금 도회지 재미 보는 장사 없다. 더 큰 일은 돈 벌어야 할 졸업생이 미취업 무직자들이다. 회사 은행 앉을자리 하나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니 이게 문제다. 부사관학교 합격이 논 엿 마지기 사기보다 어렵다니 젊은이들 어찌하랴. ‘송곳 꽂을 자리 하나 없다’는 말과 비교되는 서글픈 풍속어로 ‘남의 집 문고리 한번 잡아보기 어렵다’ 묘한 세상이다. 여고 3년생들 대체로 키 작고 몸 뚱뚱함은 유치원서부터 지금까지 10여 년간 좁은 공간에 갇혀 공부만 하다 보니 체격이 바뀌었다. 농사도 취직도 진학도 어렵다니 무슨 낙이 있으랴. 전엔 논사는 재미가 으뜸이었다. 이런 맛과 어울리게 취직자리가 어서 해결 돼야한다. TV 화면이나 거리에서 웃는 낯빛 보기 어려운 나라가 한국이다. 전주시청 푸른 잔디 광장이나 삼천 둔치 축구장에 뛰고 달리는 애 하나 없으니 이게 무슨 꼴인고. 나라가 너무 기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8-10 1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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