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하면 이기고 지고 죽은 사람 이야기인데 오래되면 희미해진다. 임진왜란, 6·25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원균 이순신 권율 장군 외에 별로 기억하는 사람 없이 흘러가는데 전라도는 어떤가. 황진(黃進) 정담(鄭湛) 이정란만 알아도 대단하다. 이 분들을 따르던 병사가 많았지만 지위가 낮고 죽은지 오래라 관심 밖에 있다. 전쟁은 병졸들의 싸움이다. 현충원 사병묘역 돌비석이 말해 주지 않나. 치열한 ‘배재전투’ 목숨 던진 용사와 의병 애매하게 죽고 병신 된 백성은 안중에도 없다. 상고할 족보 문헌 자료가 적어 안타까운데 마침 두 분의 사적이 가까운 데 있다. △고산면 어우리 샘골 우주황씨(紆州黃氏) 전주파 종산에 ‘황박(黃璞) 단소(壇所)’가 있다. 자는 기지(琦之), 호는 죽봉(竹峰)이며 1582년 무과에 급제 선전(宣傳)과 만호(萬戶)를 했다. 1592년 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500인을 이끌고 조헌, 고경명, 황진, 정담과 함께 일본 장군 코바야카와 타카카케(小早川隆景)과 싸우다 전사했으나 시체 수습이 아니 되어 결국 설단 오늘에 이르며 황정규(黃貞奎:원광대학병원관리과장)가 그 후손이다. △황박의 12촌 황포(黃褒)는 의병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는 도중 고산에서 병사했다. 그 손자 자후(自厚)는 학문이 높아 유생들이 익산 팔봉사(八峰祠)에 양인을 배향했다. 매사에 시동은 당사자가 걸어야 한다. 황포 13세손 황양규(黃亮奎:한국황씨중앙종친회부회장·종사보존위원장)는 종원을 설득하여 이치 현장에 황포·황박 사적비를 세워 정부의 눈을 뜨게 해야 한다. 1,000만원이면 족하다. 임란 당시 고산 주민 고(高:제주), 유(兪:기계), 인(印:교동), 국(鞠:담양), 김(金:고령), 구(具:능성), 오(吳:낙안), 임(任:진주) 8성이 살았기에 이 집안에도 분명히 희생자가 있을 것이나 전설조차도 없어 원혼에 미안하다. 다만 진주임씨 윤성(당시 46세)은 선조를 호종했다는 기록이 《호남절의록》과《천곡단지》연보에 나온다. 임란 전후 고산 현감은 황신(黃愼:1591년)과 신경회(申景禧:1593년)이었고 신경희는 ‘행주대첩’에 참여했다. 이때 고산 사람 누군가는 따라갔지 않았겠나. 내월리 한씨 정려와 구억리 안동김씨 정려도 왜란과 관계있다. 유족과 관계 당국자가 머리를 맞대면 무슨 좋은 일이 있지 않겠나. 경상도는 가수도 시인도 전설도 챙기더라.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10: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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