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성 함부로 말하면 아니 되지만 워낙 뜻 깊은 성씨는 알아 둬야 한다.
△우리나라 김씨(金氏) 신라(新羅), 가야(伽倻) 후손이 많은데 모두 ‘금궤(金櫃)’와 ‘금란(金卵)’에 따라 얻게 된 성씨이다.
그런데 ‘금(金)’을 왜 성에선 ‘김(金)’이라 하나? 이는 투철한 자존심 때문이다. 고려 북쪽 금(金)나라에 시달려 나쁜 이웃이었으므로 그들의 국호 금(金)과 같게 발음 할 수 없다는 투철한 자주정신이 작동하여 음을 바꿔 ‘김(金)’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황씨《한중록(閑中錄)》에 있다.
△고산에 능성구씨와 창원구씨가 산다. 창원구씨는 원래 구(仇:짝 구)씨였으나 정조의 배려가 있어 ‘구(仇)’를 ‘구(具)’로 바꾸었다.
병조판서 이시수가 정조께 아뢰기를 “영남 무과출신 구시창(仇始昌)이 하소연하기를 특별한 은전을 입어 성을 구(具)로 바꾸었는데, 구성(仇姓) 모두가 영화롭게 여기며 방목(榜目)과 천안(薦案)에 부표(付標) 해주기를 청합니다. 시창 이미 성자를 고쳤으니 시창처럼 장적(帳籍)과 공사문자(公私文字)까지도 ‘구(具)’자로 시행토록 분부하시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하니 왕 그대로 따랐다”고 하였다(1798. 6. 6 조선왕조실록).
맹자 어머니가 구씨(仇氏) 구지 기피할 필요 없으나 성씨는 사정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가천 사는 천씨(千氏) 시조 이야기이다. 천만리(千萬里)는 임진왜란 때 두 아들[祥, 禧]과 함께 총독장(摠督將)으로 2만군을 이끌고 참전하였다가 그대로 머물러 영천천씨 시조가 되었다.
숙종은 명나라 황제를 위하여 궁중에 대보단(大報壇)을 만들었는데 천만리도 여기에 함께 제사하였다고 한다.
△고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백(白)-수(水)-단(段)-지(池)-강(姜)-배(裵)-신(申)-천(千)-석(石)-고(高)-가(價)-송(宋)-유(兪)-전(全)-박(朴)-공(孔)-신(辛)-음(陰)” 18성이 있다(회상사40년사). 우리는 이들을 찾아 재입향(再入鄕)시켜야 한다.
오래된 씨족은 고(高), 유(兪), 인(印), 국(鞠), 김(金), 구(具), 오(吳), 임(任) 8족인데 가장 걱정스러운 집안은 삼기리 수가 자꾸 주는 교동인씨(喬洞印氏)이다.
완주문화원에서 낸《고산입향조100성집(200 5)》을 보면 우리 거의 연결되어 있는 핏줄 서로 존중해야할 씨족이다.
얼마 전 김모 국회의원 황희 이야기 잘 못했다가 호되게 당했다. 이게 한국이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