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란 속담이 있다. 아무리 후회하고 애달파 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요새 고산 읍내 사람들의 측은한 모습이다. 역대 군수 새해 들어 시찰 나오면 고산면민 몸을 조아려 “옛 군청 터를 복원해 달라” 하소연 한다. 최충일·임정엽 전 군수나 박성일 현 군수 늘 듣는 소리이다. 그렇다고 깊이 연구한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당한 논리 전개도 빈약하며 당국자들 역시 진지하게 듣는 태도도 아니며, 우선순위를 모르니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자리를 뜨면 흐지부지 기억에서조차 사라지는 허담으로 끝난다. 부군수나 과장, 의원들도 화두에 올리지 않으니 중장기 계획에 들 수 없고 또한 주민들의 일관된 외침이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 언젠가는 시늉이라도 내줄 때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허송세월 시간만 흐른다. ‘군수 우리고장 출신이고 학예사를 두었다니 알아서 해줄 게 아니겠나?’ 짝사랑(?) 이런 기대감에 젖어있을 뿐 속 깊은 문·사·철(文史哲) 깊은 토론이 없다. 양측을 위해 옛 관해(官廨:관사)를 소개한다. 특전사 유 아무개는 ‘△△죽기 전에 알아둬야 할 때’라며 끼리끼리 속삭인다. 당연한 이야기 서운할 게 없다. 조선시대 고산 관해에는 “객사(용도·규모 생략), 동헌, 내아, 책실, 작청, 통인청, 사령청, 관노청, 형방청, 관청, 장청, 향청, 군기고, 유상고, 동창, 서창, 옥, 문루” 등이 있었다. 알기로 이 모든 건물을 한 번에 복원하자는 건 아니고 우선 형식적이나마 흔적이라도 표시해 소멸의 한을 달래보자는 바램이다. 전쟁과 무지는 이래서 무섭다. 나라 망하니 군이 폐지되고 청사는 주재소가 됐으며 6·25전쟁 중 처지르자 그 빈터 개인에게 슬쩍 넘어갔으며 생각한답시고 충혼비 아래에 도로 계획선이 그어져 언젠가 한복판에 길이 나 두 쪽 될 날이 멀지 않으니 영령(英靈)들 과연 기뻐하실까? 당국자와 식자층 주민들은 문화 가치와 추모 의식을 엄밀하게 따져 봐야 할 때이다. 백제 근초고왕(346∼375)이래 1,600년 고산 역사가 점점 희미해지는 현실이 안타깝고 옛 이름 ‘고산(孤山)’으로 나자빠지는 것 아닌가 자못 걱정이다. 축구에서 마치 ‘자살 골’을 차 넣는 것 같은 현상이 가슴을 무겁게 한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9: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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