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가면 묘와 나무 많고 나무 얘기 재미나지만 묘 하나하나가 역사를 간직했다. 묘비, 상석, 망주는 귀중한 사료요 볼 수만 있다면 묻혀있는 묘지(墓誌) 역시 소중하기 마찬가지이다. 전주이씨 이 태조 이하를 선원(璿源)이라 하고, 그 위는 선계(先系)라 하는데 선계 시중공 이단신 후손 이경동(1438∼1494)은 궁중 봉직 30년 중 성종을 모신 20년 동안 대사헌과 병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특출한 중신 전주사람이다. 작년 말 《뇌계집》에서 유호인(兪好仁:1445∼1449)이 지은 이경동 모친 경주이씨 묘지를 보았다. 집안에서 이제껏 모르던 사실 500년 전 이야기가 소상하다. 1491년 2월 28일 86세에 서울 집에서 돌아가시니 두 달 후 4월 27일 경상도 선산 ‘냉산(冷山) 서록’에 모셨고 장자 원손(元孫)이 있었다. 경동 양자 갔다 되돌아온 이야기며 성종 21년(1490) 9월 9일에 대궐에서 베푼 노인잔치에 경주이씨 경동 어머니가 초청되어 ‘정경(貞敬)부인’ 봉호를 받았다. 머리는 희었지만 건강했으며 나아가고 물러남과 사양하고 대함이(進退辭對) 규범에 어긋나지 않아(不失規度) 양 전하께서 아름답게 여기셨다. 어머님을 고향으로 반장(返葬)할 땐 나라에서 3도에 특명을 내려 필요한 물자를 대었고 조정에선 부물(賻物)을 내렸다. 이게 역사이다. 독자 열정을 가지고 글을 볼 때 역사의 꽃은 피어오른다. 조선 초 류습 장군이 권근 영전에 올렸던 제문을 찾아주니 고흥류씨 종중은 반기며 우람한 돌에 새겨 세웠다. 이경동 양친 묘는 전주 가련산 서록에 있고 하가지구에 있는 안동재(安東齋) 천년도시 복판에서 보호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팔복동 추천대 가까이에 이경동 신도비가 있으며, 서청원(徐淸源) 국회의원 물가 ‘전라관찰서 서기순 영세불망비’를 종원들과 함께 답사하는 모습 아름다웠다. “책과 문서를 중히 여기는 집안은 번성하고, 지성이 딸리는 종중 망하더라.” 서울간송미술관 학예사의 말이다. 50년 전에 나은 한문책 《고산지》번역작업은 새로 뽑힌 완주군수의 지적수준으로 보인다. 전주시 가산(可山)종중은 자비로 자료를 모아 《전주인 이경동》을 편찬중인데 보는 이마다 ‘콩 심은데 콩이 난다’는 좋은 덕담을 보낸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9: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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