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세상 건성으로 사는 것 같지만 남의 눈이 무섭다. 얼마 전 TV 연속극에 ‘왔다 장보리’가 있었고 여기에서 악역 여인 ‘연민정(이유리 맡음)’이 시장에 나가면 ‘나쁜×’이라고 수근 거린단다. 이래서 행실이 중요하다.
전주 서부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많은 자연부락이 사라졌는데 사람들의 행실 따라 세 가지 평가 대상 마을이 있었다.
▲마전(馬田)‘양반!’(○), ▲서곡(西谷)‘사람!’(△), ▲ㅊㄷ‘놈!’(×)이라 불렀단다. ㅊㄷ은 ㅊ씨가 많이 살았는데 시시비비가 많았고 대체로 우격다짐 까다로워 ‘놈’ 소리를 들었단다.
이젠 평가하던 사람도 평가받던 ‘ㄴ’들도 뿔뿔이 헤어지고 그 자리엔 원룸과 상가 학교 아파트가 들어서 어디가 어딘지 거기 살던 사람들도 알쏭달쏭하다며 설명이 서툴기에 이름만이라도 남겨 두자고 여기 적어본다.
『발산(鉢山)-독다라-바위밑-장나들이들-돌씨메-명지보-매미티-정낭거리-앞산-뒷동산-외야시고개-서당골-시앙골-당살미-벌판-반마랏-집은안골-안골-잿배기-쌍방애실-물방애실-구답-뒷골-뜸밖의-애장터-노리재-잔등너머-큰시암-외나무다리』 등등(이장수 도움) 여럿이었으나 개발 전 항공사진을 펼쳐놓아야 짐작이라도 가능할 뿐이란다.
원래 ‘전주서십리(全州西十里)’라던 우전면(雨田面)이 이젠 자동차로 10분 거리 이웃이다.
황방산은 여기와 혁신도시 사이의 동산이 됐다. 굴을 뚫어 길을 내면 ‘진빠진 전주’가 생기를 찾을 것이란다.
‘소통’을 얘기하는데 소통의 앞 단계가 ‘눈길[視線]’과 ‘경청’이다. 시선과 경청을 무시하면 불평해소에 다가서지 못하는데 높은 사람일수록 번뜩하는 국민의 발상을 외면한다.
그래서 ‘양반!’, ‘사람!’, ‘놈!’은 아직도 존재하며 막말 악담이 버릇되어 ‘놈’자가 따른다.
대한(大韓)민국의 ‘한’은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의 ‘한(韓)’에서 왔다.
일부 정치인들 천방지축 껄떡껄떡하지 말고 ‘놈 소리’ 듣지 말아야 늪에 빠진 경제가 살아난다.
완주 출신 윤건중 전 농림부장관은 쌀값 올려 달라 외치다 쫓겨났다. 농민 위해 몸을 던진 장관이었다. 이 ‘양반’ 봉동에서 낳고 삼례에서 살았으며 고산에서 죽었다.
9급공무원 되기도 어렵거늘 장관 대단하다. 농민 편들은 윤 장관을 잊어선 아니 된다. 정말 대한민국 애국자가 필요 없는 나라라 해도 괜찮단 말이냐.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