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빼어든 노트 비망록 뒤편 비록 누렇게 바랬지만 그 위에 또박또박 적혀있는 여러 분의 성함 앞에 눈길이 멈췄고, 다음 장을 넘기고는 그만 놀라 ‘아~ 무심한 놈! 하고 나를 나무랐습니다. 감히 부끄러워 형님! 아우! 친구! 소리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여기엔 여성들도 많습니다. 기껏 할 수 있는 말 한 마디는 오직 ‘고마운 선생 님’ 이 말 뿐입니다.
돌고 돌아 아홉 번째의 전근지(轉勤地). ‘이제 죽은 듯이 지내다가 조용히 떠나리다.’ 작심했지만 피할 수 없는 건 가간사(家間事)라 7년 동안 아들 셋을 여우고 정년까지 맞았으니 받은 은혜 끼친 폐가 태산 같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성명을 바위에 새겨 두어도 모자랄 터인데 무기력한 기질은 여전하여 여기 지상에 조차 싣지 못하는 옹졸함이 부끄럽고 측은합니다.
24년 전 고상한 그 인격과 자애로운 모습 앞에 두 손 모아 사의를 표합니다.
앞에 금액을 적고 ‘약소합니다.’/ ‘작은 정성을 보냅니다.’/ ‘당선을 진심으로 빕니다.’/ ‘오재명 5만원’ 등등 여러 모양의 은혜 앞에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1991년 6월 자식이 지방자치광역의원선거에 입후보하자 보내주신 정성들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지요. 이 때 지은 빚을 어찌 하오리까?
지내온 이력을 뒤져보니 70여 년 동안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크고 많아 감당키 어렵습니다.
부모형제 일가의 고마움은 여기서 빼고 우선 보잘 것 없이 눈만 뻥한 왕눈이를 돈과 선물을 주며 격려해 주신 그 사랑 너무나 고맙습니다. 제 이름을 아시는 모든 분은 은인입니다.
끄적거려 보낸 잡문에 원고료를 주셨고, 사투리 투박한 말을 듣고도 강연료를 통장에 넣으셨으며 농사지어 좋은 것만 골라 보내시고 떠나는 자 뒤통수에 주먹질이 아니라 전별금 송별연에, 상을 당하면 조위금, 해외 출장에는 노자를 보태주신 손길마다 배로 갚아도 모자랄 터인데 만나기조차 못하여 품앗이는 커녕 떼어먹은 파렴치가 되었습니다.
고산, 운주, 소양, 봉동, 전주, 이리 이곳저곳에서 하고 많은 인연 쿵쿵쿵 심장 자극하는 피 있을 때 만나야 하는데 어찌하오리까.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이 철딱서니 없는 사람 2014년 연말을 맞으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 입장권 한 장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