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동교 북편 만경강 둑 따라 내려가면 성덕마을 경주이씨 집성촌이다. 천안전씨는 이종영의 아내로 덕행을 실천하여 마을 안에 정문(송재성 글)이 있다. 전 부인(1853-1937)은 전재홍 딸이다. 전주향교 유림 황의찬 외 29인이 대성교(大成敎)에 보낸 덕행포장(德行褒狀)이 있다. 원문을 요약하면 △홀로된 시어머니를 모셨다 △안질로 앞을 보지 못하기 5∼6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망까지 들었다 △밤에는 울고 낮에는 웃어대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똥을 온통 벽에 발라 냄새가 고약했다 △사람들은 코를 막았고 고개를 돌렸지만 △전씨부인은 밤낮없이 시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몸소 치우고 주변을 지극정성 깨끗이 했다 △이처럼 변 처리가 힘들어도 끼니마다 고기·생선 좋은 반찬을 만들어 입에 넣어 드리며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여러 해를 모셨다. △그뿐이랴. 일가친척 손님께 항상 따뜻했고 △어려운 이웃을 도왔으며 △동학란이 일어나자 지혜롭게 대처하여 집안을 지켰다. 정절·후덕·자녀교육·길쌈·바느질·근검·재산 늘리기·식구건강관리·초상·제사 등 무엇 하나 소홀함이 없이 올바르게 살았다. 선비들은 ‘하늘이 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如非天出之誠)’, ‘세상을 평안케 한 덕행(安能如是德行)’이라 했다. 진·선·미 모두를 갖춘 부인이었다. 자기를 죽기며 살아간 한평생이었다. 묘는 비봉면 봉산리 소금바위 북쪽 해좌이다. 손자 종택이 글을 짓고 종렬이 글씨를 써 세운 비가 있다. 아들이 4형제(규항 규성 규병 규원)이고, 손자(종만 종열 종섭 종환 종길 종록 종완 종택 종석)가 여럿이다. 증손 형우는 화산·초포·이성·용진·상관·고산·운선(운주)·산북·수선·봉성·봉동·호성·우전초등학교에서 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며칠 전 이자우 씨를 만나 아버지와 숙부 글을 주니 무척 반가워했다. 천안전씨처럼 효도한 덕부가 적지 않다니 우리도 숨은 인물을 찾아 인륜을 이어나가자. 완주에 훌륭한 여인이 어찌 이뿐이랴. 학교장은 학생과 함께 주변의 효자문 정려각을 찾아가 깨끗이 하면 특별한 인물로 평가 받을 것이다. 몇 해 전 정치인 서청원 현 국회의원은 완주군 삼례 봉동 어떤 비석에 큰절을 하고 돌아갔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
최종편집: 2025-06-24 09: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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