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는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사회복지 자원봉사활동을 모범적으로 수행하였기에 표창합니다.”
지난 1일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2014년 전국 사회복지나눔대회’ 행사가 열렸다.
이날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무지마을에 사는 양영자 어르신이 단상에 올랐다.
자원봉사 부문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 표창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상을 수상하는 데 대해 결코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삶이 곧 ‘봉사’일 정도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한평생 몸을 바쳤기 때문이다.
양씨의 나이는 올해 일흔 살. 노년을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도 다니면서 한참 즐길 나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삶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사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편안한 삶이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할 지도 모른다.
“행복이요? 별것 있나요. 내가 즐거우면 그게 행복이죠. 여행 다니고, 좋은 것 입고, 먹고 한다고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경로당이나 요양시설을 찾아다니며 봉사자로서의 살아가는 삶이 그에게는 둘도 없는 행복이란다.
양영자 어르신이 봉사자의 길을 걷게 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49년 전. 그의 나이 21살 무렵 서울에서 미용고등기술학교에 다니면서부터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1학년을 마치고 동대문 상봉동에서 미용사로 일을 했다.
9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30년 넘게 미용사로 근무하면서 동생들을 다 보살필 정도로 부지런했다.
또한 그는 일하면서도 원불교 단체 등을 통해 틈틈이 이미용과 목욕봉사를 했을 만큼 봉사는 일상생활이었다.
남편 따라 구이면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20년 가까이 됐지만 몸에 밴 봉사는 이곳에서도 여전히 발휘됐다.
구이면은 물론 인근 전주의 요양시설을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다니며 미용봉사활동에 참여했다.
미용 외에 구이면에서는 만능 탈렌트로 통할 정도로 남을 즐겁게 하는 재능도 타고나 그가 가는 곳이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렇듯 남들에게 기쁨을 주던 그였지만 아들의 사업 실패로 인해 남몰래 울어야 했던 힘든 시기도 경험했다. 하지만 잘 견뎌냈다.
“안 좋은 것, 버릴 것은 빨리 버리고 이겨 내야죠. 내게 불행이 오면 내가 겪어야할 운명이라 잘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해요.”
현재 완주군교육지원협동조합에서 웃음치료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봉사가 있는 날이면 그 어떤 크고 화려한 행사도 보이콧이다.
“아무리 큰 행사일지라도 봉사는 내 인생의 생명줄이기 때문에 절대 가지 않습니다.”
기자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라는 말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양영자 어르신.
고희(古稀)의 나이를 잊게 하는 그의 왕성한 봉사활동이 80살, 아니 100살이 넘도록 계속 이어지길 기대하며 그의 꿈을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친다.
“살아있음에 매일 감사하고, 남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죽는날 까지 봉사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