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가운데 으뜸은 ‘송이버섯’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고 워낙 비싸 아무나 먹지 못한다.
제철에 버섯 따러 나선 부자가 소식이 없다.
마을 사람들이 당국에 알려 그 도움으로 찾고 보니 싸늘한 시체였단다. 경찰은 ‘혹 타살 아닐까?’ 나름대로의 생각에 따라 부검을 한 결과 심장마비(?)였단다.
일이 벌어지면 일파만파 당자 죽고 나니 막상 알릴 데를 모르겠더란다.
땅을 치며 통곡할 당내간에게도 연락이 없었다. 4촌형 80넘었으니 사고사 걱정할까봐 연락을 안했다면 언뜻 보아 우애심 경장지도 같으나 그게 아니고, 형제간 모두 막힌 생각 고인과 미망인에게 큰 실수이다.
백부 숙부 고모가 유복지친(有服之親)을 모른다면 부끄러운 나이 숙맥소리 들어 마땅하며, 도대체 호상(護喪) 정도는 알고 훌쩍거려야 한다.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세 5주기를 맞아서도 화환을 보냈는데 4촌에게 연락을 안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고 문제 집안이다.
독버섯은 위험하다. 못 먹는 버섯 오뉴월부터 난다. 버섯 따러 나가 죽은 사람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미망인과 자녀 형제자매 정상이라면 제사상에 버섯 못 올릴 것이고 혹 먹는다면 동복인(同腹人)으로서 못할 짓이다. 버섯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았나.
두엄더미 위 버섯은 곧 시들어 사라진다. 바로 이게 인생이다.
4촌, 고종, 당질, 재종, 재당질이 여럿인데도 산 자가 연락을 안했음은 망자 생전의 뜻과 처신이었던가.
당내간에 부고 한 장 전화 한 통 없었음은 겸손이 아니라 무지이다. ‘문상이야 3년 안에만 하면 된다’ 했으니 날 잡아 가면 그만이다.
사고 현장에서 병원을 거쳐 장례식장 이틀 밤 결국 많은 종산 빈 땅을 두고 화장하여 어딘가 진열된 유골 단지 사이에 끼어 두었으니 애처로운 삶이다. 독신 이래서 외롭다.
인명은 재천 둥글둥글 너그럽게 산 사람이 행복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무리 잘 났어도 ‘인홀불견(人忽不見:사람 보이다가 슬쩍 없어지고 아니 보임)’이다. 있을 때 잘 하라.
피는 물보다 진하다. 이게 강상(綱常)이요 윤리이다. 윤리 저편엔 무엇이 있을까? 연말을 맞으며 애도(哀悼)한다. 선현들이 무어라 할까. 흥망성쇠 바위도 모래가 되더라.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