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고산현감에 홍우량(洪宇亮)이 있었다.
갑신년(1644, 인조22) 봄 통훈대부에 올라 고산현감(高山縣監)이 되었는데 청렴하고 간명(簡明)하며 세금을 제때 거둬 백성들의 생업이 평안했다.
전주사람들은 고산 접경에 보를 막아 너른 들판 농사를 짓는데 1645년 큰 가뭄이 들자 전주 부윤이 관찰사에게 상신하여 고산 모든 저수지를 터 물을 빼가자 고산현 민초들이 울며 홍 현감 앞에 달려와 억울함을 호소했다.
현감 역시 화가 나 그 아래 전주저수지를 터버리게 했다.
어떤 사람이 홍공께 “전주사람 하는 짓이야 옳지 않지만 이미 내려간 물인데 터버리면 남의 잘못을 본떠 더 심하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이르자 “그렇기는 하지만 전주사람 제 지역 큰 것을 믿고 작은 우리 골을 멸시하니 만약 이대로 둔다면 그 폐단이 오래 갈 것이니 어찌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관찰사는 전주부윤의 보고만 듣고 노하여 고산현감을 꾸짖었으나 홍 공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사리에 따라 더욱 굳세게 반론을 펼치자 비록 감사일지라도 그 뜻을 꺾을 수 없어 화해케 하였다.
당당한 위세 앞에 민초 사랑 소신을 굽히지 않은 보기 드문 명관이었다.
그런데 마침 7월 진상한 과실의 색깔이 나쁘다는 핑계로 파면되어 돌아갔다.
조사 결과 당시 전주부윤은 채유후(蔡裕後), 관찰사는 윤명은(尹鳴殷)이었다.
전주 완주는 이런 역사가 있으니 상생하자는 의미로 이 글을 썼다.
전주 식수와 먹을 것이 완주에서 공급되어 생명줄 아닌가.
이런 경제순환으로 보아 시의회 시내버스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시내 고등학교와 대학생 중 완주 군민이 많고 전주에 살며 완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거반이다.
도토리 키재기로 전주 완주 버티기 경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분단국가 한쪽 구석 호남에서 유독 움츠린 전북인데 전주 완주가 서로 밀고 당기면 꼴불견이다.
김승수 시장, 박성일 군수 함께 부지사를 했으니 경쟁 관계인지, 아우 형님 친한 사이인가 알 수 없으나 시민 군민을 위해서라면 가뭄에 보 트는 일 않기를 바란다.
김승수 시장 후보 시절 ‘가슴 두근두근하다’ 했으니 안정을 찾아 명관 되기를 바란다. 시 의원들 도량을 펼쳐라.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