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생강을 수확할 시기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봉동 마을 곳곳의 생강밭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캐놓은 생강을 다듬어 포대에 넣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해가 바뀔수록 생강재배 면적이 줄어들고 있어 씁쓸하다.
한때 전국 생강시장을 호령했던 봉동생강이 작금의 현실을 보면 쇠퇴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뭇 걱정이 된다.
봉동생강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봉동생강 명맥 잇는 김운회씨
봉동읍 낙평리 신기마을. 김운회(58)씨의 고향이다.
동갑내기 부인 윤복례씨와 생강농사만 227마지기(1마지기 200평)를 짖고 있다.
계산하면 148,760m²(4만5천평), 정확히 파악은 안해봤지만 생강농사 규모로 따져보면 봉동에서 단연 최고가 아닐까?
벼농사도 짖긴 하지만 생강농사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 즉 새발의 피다.
생강 농사지은 지 40여년.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밭에서 씨앗을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들을 직접 체득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생강 재배 기술을 담보로 5천여평 남짓한 생강밭을 열심히 일궜다.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한 평생 생강밭을 오가며 부지런히 땀 흘려 일한 결과, 지금은 4만5천여평의 생강 대농이 되었고, 남들이 부러워 할 부농(富農)의 꿈도 이룰 수 있었다.
실제 매년 평균 1년 수확량이 1만포대(20kg들이)에 매출액은 20억원을 넘어서고 있으니, 이정도 규모면 가히 ‘중소기업 사장’이라 불러도 괜찮을 듯싶다.
재배지도 기존의 봉동에서 김제지역까지 영역을 넓혔다.
봉동생강의 씨앗이 김제땅에 심겨진 것이다.
지난 13일 김제시 용지면에 있는 250여평 규모의 김씨의 생강밭에서는 인부 150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평균 140~150명이 필요합니다. 하루 품삯이 밥값을 포함해 1,250만원 나가는데, 오늘까지 15일째 했으니 전체 1억7천만원 정도 현금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생강을 캘 수가 없어요.”
그뿐만 아니다. 여자 하루 인건비 6만5천원, 남자는 15만원, 거기에다 하루 밥값만 150만원이란다.
비싼 인건비 때문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더라도 대형화하지 않으면 타산이 맞지 않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4만5천여평의 생강밭을 관리하기 위해 생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노하우를 갖춘 6명을 보통의 회사 직원처럼 채용했다. 움직이는 기업이 맞다.
오늘이 있기까지 남들과는 다른 김운회씨만의 특별한 농사비법이 있기에 가능했다.
“적기에 비료와 약을 주는데요. 비료는 일반비료가 아닌 돈이 좀 들더라도 원예용 비료를 사용합니다. 돈이 많이 들어 간다고 그냥 비료나 주고, 투자하지 않으면 좋은 결실을 볼 수 없어요. 생강이 안죽게 하려면 좋은 비료와 약을 적기에 쓰는 투자와 노력이 필요해요.”
좋은 품질의 생강을 얻으려면 비용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는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에서 답을 찾았다.
똑같이 1마지기에 생강을 심어도 김운회씨가 남들보다 더 많이 수확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열정, 그리고 타고난 근성이 오늘의 김운회씨를 만들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제 아내하고 단 둘이 약통 짊어지고 9월달까지 이틀에 한 번은 밭에 나가는데 오전 10시나 11시까지 일하고 집에 갑니다. 이렇게 지금껏 일했어도 아파본적 없어요. 저를 쇠로 보면 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신경썼으면 아마 동네에서 진짜 효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농사요? 잘되면 재미있는 게 농사에요. 밭에 한 번이라도 더 가보고 싶고... 제가 보기에 농사는 노력하지 않고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땅은 거짓말을 안해요. 제가 한 만큼 반드시 열매를 줍니다.”
이렇듯 생강농사 만큼은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자신이 있고, 돈도 제법 만져봤다는 그도 고향 봉동 생강의 명맥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심각한 걱정과 우려를 표시했다.
“저 어릴 적만 해도 봉동생강이 전국시장을 장악했는데 지금은 경북 안동과 충남 서산이 전국을 좌지우지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워요. 안동은 주문량이 추석 때부터 밀려서 11월 15일까지 전국을 움직이는데 전라도 생강은 꼼짝도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김운회씨는 경북 안동의 경우 안동농협이 적극 나서 수매를 많이 해주기 때문에 농민들은 마음 놓고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민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 하죠. 지역 농협이나 기관들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봉동생강은 앞으로 명맥이 사라질 수 밖에 없어요.”
봉동생강과 결혼해 지금까지 40여년을 살아온 그에게 꿈을 물었다.
“꿈요? 거창할지 모르지만 봉동생강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어요. 그것 딱 한 가지에요.”
■봉동생강의 역사
‘봉동(鳳東)’하면 늘 별명처럼 따라 붙는 수식어가 바로 ‘생강’이다.
생강의 주생산지가 봉동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봉동생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배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조선시대 영·정조때 전라도감사 이서구(李書九)가 봉성현(鳳城顯)의 옛 기봉산리(基鳳山里)의 들판을 보고 ‘이곳에 향초가 자생하여 주민들에게 복을 줄 것이다’라고 예언했다는 설(說)이 있다.
또한 신라시대에 신만석(申萬石)이라는 사람이 중국사신으로 그곳 봉성현에서 생강뿌리를 얻어와 전라도 나주와 황해도 봉산에 심었으나 실패하자 다시 봉(鳳)자가 붙은 땅인 완주군 봉상(봉동의 옛지명)에 심어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생강의 효능
생강은 ‘신이 내렸다’ 할 만큼 많은 효능을 갖고 있다.
먼저 생강은 성분이 따뜻해 체내에 침범한 차가운 기운을 발산시켜주고 소화기계를 따뜻하게 해 주며 차가운 기운으로 인한 구토나 설사 등을 멈추게 하는 효능이 있다.
생강에는 특히 디아스타제와 단백질 분해효소가 들어 있어 생선회를 먹을 때 생강을 곁들여 먹으면 소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땀을 내고 가래를 삭히는 작용이 있는데, 동의보감에서는 생강이 담을 없애고 기운을 내리며, 차가운 기운과 종기를 제거하며 동시에 천식을 다스린다고 했다.
아울러 체내의 수분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얼굴이 붓는 경우, 소변을 잘 나오게 해 부기를 빼주는 효과가 있다.
생강은 음식의 감칠맛을 살리는 향식료뿐만 아니라 한방 처방에서는 빠질 수 없는 약재로도 많이 활용된다.
처방에 생강을 넣는 것은 기운을 흩어지게 하는 성질이 있어 약물 효과가 빨리 전달되도록 하고, 해독시키는 작용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