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내 고생시킨 남편 많았다. 동지섣달 양식 떨어지는 집안 생각이 난다.
사회구조가 그랬기에 천형(天刑)이라 여기고 살던 시절 남자 게으르면 그 피해 여자가 온통 뒤집어썼다.
남편 날 궂어 산에 못가고, 추워 안가고, 눈 내려 꼼짝 못하고, 장날이라 빠지고, 몸 아파 누우면 아궁이에 땔 게 없다.
아낙네들 헛청바닥 긁어다 솔잎 부지깽이로 들어 솥 밑에 대고 가물거리는 불로 밥을 지었다.
불기 윗방 갈 턱 없으니 문틈 황소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겨울 내내 감기 달고 애한테 빈 젖 빨리면 피골이 상접했다.
횐대기(벼 훑고 검불 섞인 이삭) 바람에 날려 절구질해 제사상을 차렸고 불린 쌀 절구통에 빻아 떡을 했으니 일로 보아선 안 먹는 편이 낫지만 시봉하는 어른과 손꼽아 기다리는 애들 때문에 제 몸 보다 무거운 도굿대(절굿공이)질을 했다.
현대 여성들 낭군께 아흔아홉 번 절하며 잘 공대해야 한다. 수돗물 가스렌지 이만하면 호강이다. 어머니 할머니 사신 세상을 생각하자. 도란도란 남편 존경하며 아이들 훈육하면 현모양처 아닌가.
예쁜 놈, 멋진 놈, 다 갖춘 놈 따로 없다. 꿈 있는 여인은 늙지 않는다.
헬스! 다이어트! 화장품! 다 있어 좋은 세상 아닌가.
전주중앙성당 옆 전깃불에 반짝반짝 알록달록 고운 떡집 단돈 2,000원이면 아내도 친구도 반해 버린다.
정숙온량(貞淑溫良) 치하하며 서로 눈을 맞춰 보아라.
바쁜 여인들에게 《한국근대여성사(111면)》읽으라면 부담 되려나.
이지용(李址鎔) 천금 들여 진주기생 산홍(山紅)을 애첩 삼으려하니 “세상에서 대감을 5적 우두머리라 하는데 내 비록 천기이나 어찌 역적 첩이 되리오” 단호하게 거절했다.
3·1운동 때 여자 고문이 더욱 혹독해 벌거벗겨 매질하고 짐승처럼 기어 다니게 했다.
정비석 지음 《이조여인사화》를 보니 세종대왕의 5남 광평대군부터 5대에 걸쳐 남자들 20 전에 다 죽자 6대째의 권씨 새댁은 20여 개 집안 귀신 보따리를 모두 불에 태우고 살림을 바로 잡아 남편 60살을 넘게 했단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집안의 큰 기둥이다.
어제가 ‘농업인의 날’ 거친 손 잡아주던 사람 있더냐. 위로 받는 세상 어서 와야 한다. 젖을까 밤중에 나가 짚단 묶는 이 사람을 왜 모르쇠 하나.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esc269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