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정성껏 키워 누군가에게 팔 때는 마치 자식을 시집보내는 심정이죠.”
상관면 용암리 토박이 최규환(59. 인애농원대표)씨. 나무와 30년 동안 동거동락(同居同樂)했다. 지나온 삶에서 나무를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그는 나무와 함께 웃고 울며 살아왔다.
4월 5일 식목일, 노란 자태를 뽐내는 봄의 전령 산수유 나무가 빼곡이 심겨진 그의 농원을 찾았다.
조경수 6만 5천평, 옻나무 1만 7천평, 산수유와 단풍나무, 쪽동백 5천평, 나무농사 규모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다.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한 눈팔지 않고 오로지 나무농사에 외길을 걸어온 인생의 성적표다.
물론 나무농사를 하기 전 축산, 벼농사도 해봤지만 재미를 못 봤다.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소양에 사는 오사장이라는 분을 만났는데 철쭉을 한 번 심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고민한 끝에 2천여평 규모에 철쭉을 심었고,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나무와의 첫 인연은 성공적이었다.
나무농사는 몸에 맞는 옷을 입었을 때의 편안함 같은 느낌을 주었으니 괜찮은 궁합. 철쭉에서 자신감을 얻은 최씨는 완주군 임업후계자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나무농사에 뛰어든다.
산림청에서 임야 매입자금을 지원받아 농사를 조금씩 늘려나갔다. 철쭉 농사의 노하우를 무기로 큰 나무, 즉 가로수에도 도전했다.
하지만 일종의 장기수(長期樹)기 때문에 혼자 농사짓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때문에 함께 일할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과 상의를 했는데 흔쾌히 후계농이 되겠다고 했어요.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죠.” 어쨌든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으니 농사도 한결 수월해 졌다.
임업후계자 활동을 시작으로 조금씩 농사의 규모를 늘리다 보니 독림가(나무를 심어 숲을 착실히 경영했다고 산림청장, 도지사, 군수로부터 인정서를 받은 사람)자격도 주어졌다.
독림가는 50ha를 가진 사람에게만 자격이 주어졌는데 지금은 완화돼 15ha만 있어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혜택도 많이 주어진단다.
현재 전라북도에는 독림가로 활동하는 회원이 4명정도라고.
수 만평을 가진 대농, 임업후계자 전라북도 2대회장이라는 화려한 명함 뒤에는 힘든 시간들도 있었다. “태풍이 불어 큰 나무들이 쓰러졌는데 세워지지도 않고 천상 베어내야 했어요. 피해 보상은 안되고 또 우리 같은 경우에는 보험가입도 쉽지 않아 어려움도 많이 겪었죠. 7, 8년 농사지었는데 톱으로 베어내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힘들었던 시간들을 경험했지만 역시 나무 농사꾼답게 산에 가서 일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지나는 줄 모를 정도로 즐겁게 일하다보니 성공의 달콤한 열매도 따라 왔다.
인터뷰 말미, 그는 세상을 향해 쓴소리도 내뱉었다. “상점 앞에 심겨진 가로수가 간판을 가린다고 제거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참 안타까워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아파트 24평 세 채에서 나오는 열기를 없애준다고 하는데 그런 소중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모든 농사가 주인 발자국 소리를 듣고 큰다’고 말하는 최규환씨. 그 만큼 주인이 관심을 얼마나 갖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라며 소중한 교훈도 기자에게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