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8일 완주보건소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최희화(58) 소장을 만나기 위해 비봉면 이수백 보건진료소를 찾았다.
완주군보건소 직원들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의 지나온 삶을 들여다봤다.
전북 부안이 고향인 그는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학창시절을 줄곧 그곳에서 보냈다.
부안여고를 졸업하고 전주간호대에 입학한 그는 졸업 뒤 서울의 한 병원에서 1년 동안 근무한 후 부모님 병환을 돌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와 부안군보건소에서 5년간 근무하게 된다.
스물여덟 살 되던 해, 지금의 남편과 백년가약을 맺고 시댁이 있는 고창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 무렵 시댁과 가까운 고창군 사반보건진료소 개소와 함께 지원해 15년간 흰 가운을 입고 주민들의 건강을 돌봤다.
1995년 3월 23일. 그는 고창에서의 생활을 마감하고 완주군 화산면 운산보건진료소와 인연을 맺게 된다.
관할 지역 주민은 500여명이었지만 진료소 환경은 열악했다. 슬라브 지붕에 살림집 방 한칸이 전부. 뿐만 아니라 당시 까다롭기로 소문난 주민들 때문에 진료소장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으니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짐작이 간다.
하지만 그는 그저 열심히 일에만 전념했다. 조금씩 주민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주민들의 발길도 점점 늘면서 그를 가족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운산보건진료소에서 최소장은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했다. “어르신들이 병원에 갈일이 생기면 간호부장이나 과장으로 있는 친구나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부탁을 했어요. 제가 덕을 많이 봤죠.”
한 두건이 아니라 이런 그의 노력은 운산보건진료소에 있는 18년 동안 이어졌다.
이러다보니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 인지 알정도로 주민들과 신뢰가 두텁게 쌓였다. 진료소는 지소와 달리 운영협의회가 있어 진료소 활성화, 힘들 때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었단다.
2001년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불의의 사고로 자식을 잃게 된 것. 하지만 주민들은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가족처럼 감싸 안으며 용기를 줘 다시금 일어설 수 있게 됐다.
최희화 소장은 세인고가 대안학교 이름으로 마을에 들어올 당시 주민들의 반대를 설득하고, 전기, 수도, 보일러를 고쳐주는 등 마을 이장 역할도 톡톡히 했다.
기숙학교인 세인고 학생들에게 진료소는 유일한 놀이터. 학생들이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잘 챙겨주다보니 큰 선물도 받았다.
“재작년 스승의 날에 학생들이 인터넷에 참스승을 공모했는데 제 이름을 추천했어요. 덕분에 대기업에서 편안한 진료의자를 후원해주었죠.”
그가 운산보건진료소에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또하나, ‘비밀은 반드시 지켜준다는 것’이다. “속사정을 털어 놓는데 제가 누군가에게 말하면 신뢰는 깨져요. 끝까지 저만 아는 비밀로 했어요.”
이처럼 운산보건진료소에서의 생활은 삶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특별하다.
올 7월 29일 비봉 이수백진료소로 발령받던 날, 주민들은 아쉬워했다.
그 역시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은 어디에 있든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2년 전부터 91살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는 외롭지 않아 좋다고 오히려 기자를 달랬다.
“퇴임 후에도 제가 가진 달란트로 봉사하고 싶어요. 119구급대를 부르고 병원까지 모시고가서 입원수속도 해드리고요.”
감동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오는 길이 행복했다.